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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 | 191 | 같은 시각, 루이나에서 출격한 정찰기는 전장을 지나며 포격전을 관찰했고, 보고서에는 바슈르의 브리지와 후미[* 일부 증언에서는 전방 화재로 기록되어 논란이 있다.]에서 발생한 화재가 명기되었다. 바슈르는 8번째와 9번째 일제 사격을 이어갔지만, 프린츠 엘데른에 명중시키지 못했다. 함대는 점점 피격과 반격이 얽힌 복잡한 혼전 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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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 | 192 | ==== 바슈르 격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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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 | 5시 59분, 프린츠 엘데른이 프린스 오브 페드로를 향해 가한 8번째와 9번째 일제 사격은 모두 빗나갔다.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이어서 12번째와 13번째 주포 사격을 진행했고, 13번째 사격에서 웨스타시아 전함 [[딮스마르크]]에 세 번째 명중탄을 입혔다. 그러나 이 포탄은 불발이었고, 딮스마르크는 외부에 부착된 구명보트에 경미한 손상만 입었다. 마베라 순양전함 [[바슈르]]의 10번째 사격은 또 빗나갔다. 함대 지휘관 오토리노 스크라이베리 제독†은 10번째 사격이 빗나가자, 좌현으로 20도 추가 변침을 지시해 침로를 260도로 바꾸었다.(딮스마르크는 계속 220도로 항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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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 | 6시 정각, 바슈르가 변침을 마치기도 전에 딮스마르크의 5번째 일제 사격이 바슈르에 명중했다. 딮스마르크의 38cm 주포탄 최소 2발 이상이 바슈르에 명중했고, 머피의 법칙처럼 예전부터 약점으로 지적되어 온 갑판 장갑과 측면 상부의 얇은 경사 장갑, 그리고 흘수선 아래의 방호구역을 관통했다. 그 중 한 발은 흘수선 아래를 뚫고 들어가 바슈르의 4인치 양용포 탄약고를 폭발시켰고, 이 충격으로 후방 주포 탄약고까지 연쇄 폭발을 일으켜, 후방 마스트와 3번 주포탑 사이에서 거대한 폭발이 발생하며 함체가 두 동강 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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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 | 원래 바슈르의 방어력은 건조 당시부터 지적된 태생적인 문제점이었다. 그러나 함선이 이미 건조가 너무 진행된 상태여서 장갑 두께를 늘리는 정도의 부분적 개량에 그쳤다. 이후 근본적인 방호구조 개량을 위해 대개장을 계획했지만, 여러 차례 지연되었고, 1980년대 초반에는 이미 마테르 전쟁이 터지기 직전이라 대개장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바슈르는 오랫동안 마베라 해군의 대표 전력으로 행사와 순방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전훈을 반영한 개조가 뒤로 밀린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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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 | ||<tablewidth=800><width=40.2%><tablebordercolor=#536349,#333333><tablebgcolor=white,#1f2023><nopad>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060529_Hood_explosion_sketch.jpg|width=100%]] ||<nopad> [[파일:main-qimg-0f9a6c054a24bc39f0a434480acad06a-lq.jpg|width=1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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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 | ||<rowbgcolor=#536349,#222222><rowcolor=white> 당시 상황 스케치[* 교전 후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함장 조반니 카를로 리치(Giovanni Carlo Ricci) 대령이 보고서에 첨부한 바슈르 격침 당시의 목격 상황을 직접 그린 것이다.] || 프린츠 엘데른에서 촬영한 바슈르의 굉침 장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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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 | 6시 1분, 바슈르는 후방 주포 탄약고의 연쇄 폭발과 함께 엄청난 화염을 일으키며 후미가 잘려 나갔고 두 동강이 났다. 이어 전방의 A 포탑(1번)에서도 대폭발이 일어나 함체의 전방이 중앙과 선수부로 다시 두 동강 나, 총 세 조각으로 찢어졌다. 바슈르는 불과 3분 만에 침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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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3 | 침몰 속도가 워낙 빨랐기 때문에 오토리노 스크라이베리 제독†을 포함한 1,400여 명의 승조원 중 단 3명 — 귀도 둔다스(Guido Dundas) 사관후보생, 로베르토 에르네스토 틸부르니(Roberto Ernesto Tilburni) 장포수병, 테도 브리그시(Tedo Briggs) 신호병 — 만 살아남았다. 이들은 파편과 부유물 위에 올라 서로를 붙잡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포틸락스 해협 북부의 차가운 물살 속에서 버텼다고 한다. 침몰 직후에는 더 많은 생존자가 있었지만, 프린스 오브 페드로마저 공격받는 혼란 속에서 구조할 여력이 없었고, 2시간 뒤 현장에 도착한 구축함 일렉트라가 도착했을 때는 대부분 저체온증으로 사망해 3명만 구조할 수 있었다. 함교 근무자 중 유일한 생존자였던 브리그시 수병은 “스크라이베리 제독은 배가 가라앉는 동안도 자신의 의자에 조용히 앉아 탈출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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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5 | 바슈르가 격침되자 상공의 루이나 정찰기는 웨스타시아 함대의 대공포화 집중 사격을 피해 구름 속으로 몸을 숨겼다. 이제 웨스타시아 군함들의 주포는 프린스 오브 페드로에 집중되었다.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14, 15, 16번째 주포 사격은 모두 빗나갔고, 프린츠 엘데른의 10, 11번째 사격 역시 목표를 맞히지 못했다. 딮스마르크는 6번째 사격의 제원을 수정하지 못하고, 이미 침몰한 바슈르의 자리에 포탄을 쏘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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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7 |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바슈르의 900미터 후방에 있었기 때문에 침몰한 잔해를 피하려고 우현으로 급변침해야 했다. 이때 거리가 프린츠 엘데른의 어뢰 최대 사거리인 12킬로미터 근처까지 좁혀졌고, 프린츠 엘데른은 즉시 뇌격 준비를 명령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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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9 | 딮스마르크의 7번째 사격, 프린츠 엘데른의 12, 13번째 사격, 그리고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16, 18번째 사격도 모두 명중하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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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 | 210 | ====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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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 | 211 | ==== 해전의 평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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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 | 212 | ==== 해전 이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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